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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일자리는 어중간한 사이에서 올까

이직한 사람들에게 어떻게 그 자리를 알게 됐는지 물어보면 묘한 규칙성이 나온다. 결정적인 정보를 물어다 준 사람이 매일 붙어 다니는 친한 친구가 아니라, 몇 해 전 프로젝트에서 잠깐 같이 일했던 사람이거나 동아리 선배거나 전 직장 옆 팀에 있던 사람인 경우가 유독 많다. 우연처럼 보이지만 여기에는 꽤 오래전에 정리된 설명이 있다.

1973년의 논문 한 편

사회학자 마크 그라노베터가 1973년에 발표한 약한 연결의 힘이라는 논문이 출발점이다. 제목이 이미 결론이다. 연결이 세서 힘이 있는 게 아니라, 약하기 때문에 힘이 있다는 이야기다.

메커니즘은 이렇게 설명된다. 아주 친한 사람들은 대체로 나와 같은 세계 안에 있다. 같은 업계, 같은 학교, 같은 동네, 그리고 서로가 서로를 이미 아는 관계망. 그래서 그들이 가진 정보와 내가 가진 정보는 크게 겹친다. 그들이 어떤 자리가 났다는 소식을 들었다면 나도 이미 들었을 확률이 높다. 반대로 어쩌다 아는 사이는 나와 다른 무리에 걸쳐 있다. 그 사람은 두 세계 사이에 다리처럼 놓여 있고, 다리를 건너오는 정보는 내 쪽에서는 돌지 않던 정보다.

그러니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정보의 양이 아니라 겹치지 않는 정도다. 매일 연락하는 사람이 열 명이어도 그 열 명이 전부 같은 회사 사람이면 새로 들어올 소식은 거의 없다. 반대로 일 년에 한 번 소식이 오갈까 말까 하는 사람이 전혀 다른 업계에 있으면, 그 한 번의 대화에 내 쪽에서는 존재조차 몰랐던 정보가 실려 온다.

그 논문이 어떤 사람들을 조사했는지

여기서 반드시 함께 말해야 할 것이 있다. 이 결론이 나온 조사가 누구를 대상으로 했는가 하는 점이다. 미국 매사추세츠주 뉴턴이라는 교외 지역에 사는, 전문직과 기술직과 관리직에 종사하는 남성들이었다. 표본 수도 크지 않았고 지역도 한 곳, 성별도 한쪽, 직종도 한 갈래였다. 게다가 오십 년도 더 전의 조사다.

그 사이에 구직의 풍경은 완전히 달라졌다. 공개 채용 공고가 흔해졌고, 채용 플랫폼이 생겼고, 직군에 따라 사람을 통하는 경로 자체가 아예 없는 경우도 있다. 성별과 직종에 따라 정보가 흐르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도 지금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니 이 논문을 이미 증명된 법칙처럼 인용하는 것은, 논문이 실제로 감당하는 무게보다 훨씬 크게 부풀리는 일이 된다.

훨씬 나중에 이루어진 대규모 검증

다행히 이 주장은 나중에 큰 규모로 다시 검증되었다. 2022년 카르틱 라지쿠마르 등이 Science에 발표한 연구다. 링크드인에서 수백만 명의 사용자를 대상으로 대규모 실험을 진행했기 때문에, 단순한 상관이 아니라 인과 수준에서 따져 볼 수 있었다. 어떤 종류의 연결이 실제로 이직으로 이어졌는지를 볼 수 있었다는 뜻이다.

결과는 원래의 주장을 대체로 지지했다. 다만 중요한 수정이 하나 붙었다. 효과가 가장 컸던 것은 가장 약한 연결이 아니라 중간 정도로 약한 연결이었다. 공통으로 아는 사람이 얼마쯤 있지만 서로의 세계 전체를 공유하지는 않는 사이. 완전히 낯선 사람에 가까운 연결에서 오는 도움은 훨씬 작았다.

생각해 보면 납득이 간다. 정보가 새롭기만 해서는 부족하다. 그 정보가 내게 오려면 상대가 어떤 자리를 보았을 때 내 얼굴을 떠올릴 수 있어야 하고,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대충이라도 알고 있어야 하고, 굳이 연락할 만큼의 마음도 있어야 한다. 너무 멀면 이 조건들이 무너진다. 너무 가까우면 정보가 겹친다. 그래서 가운데 어디쯤이 가장 잘 작동한다.

이 연구에도 분명한 범위가 있다. 온라인에서 이루어지는 구직, 대체로 사무직 계열의 일자리, 그리고 하나의 플랫폼 안에서 벌어진 일이다. 현장직, 자영업, 공고와 시험으로 뽑는 자리처럼 사람을 통하지 않는 경로는 여기에 들어 있지 않다. 결론을 모든 직업 세계로 그대로 옮기기는 어렵다.

한국에서는 이게 어떤 모양인가

한국 사람의 관계 목록은 결이 여러 겹이다. 과 동기와 동아리 사람들, 군대 동기, 첫 회사 동기, 그 뒤로 몇 번의 이직에서 스쳐 간 옆 팀 사람들. 이 목록의 전체 크기는 청첩장을 돌릴 때쯤 되어서야 처음으로 눈에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때 대부분이 발견하는 사실이 있다. 아주 가까운 사람은 손에 꼽고, 완전히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그 사이의 어중간한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이다.

일자리 정보가 자주 건너오는 자리가 바로 이 어중간한 층이다. 서로 뭐 하고 사는지는 대충 알지만 요즘 뭐가 힘든지는 모르는 사이. 명절에 안부 정도는 오가지만 굳이 만나지는 않는 사이.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나와 다른 회의실에 앉아 있고, 그래서 다른 소식을 듣는다.

그래서 무엇을 하라는 이야기인가

여기서 흔히 따라 나오는 결론이 그러니 인맥을 넓혀 두라는 말이다. 이 글은 그쪽으로 가지 않는다. 사람을 미래의 쓸모로 분류해 두면 대화의 질이 즉시 달라진다. 상대는 대개 알아챈다. 오랜만에 온 연락이 실은 부탁의 서론이었다는 걸 알아차린 경험은 누구에게나 한 번쯤 있고, 그 기억은 오래 간다. 사람을 자원으로 관리하기 시작하면 정작 그 사람이 정보를 옮겨 줄 이유가 사라진다.

게다가 위의 연구들이 보여 준 건 관계를 늘리라는 처방이 아니라 정보의 흐름에 관한 구조적 사실에 가깝다. 그 사실이 실제로 시사하는 바는 오히려 소박한 쪽이다. 이미 아는 사이인데 몇 년째 소식이 끊긴 사람이 꽤 많다는 것, 그중 상당수는 다시 연락해도 이상하지 않다는 것. 그리고 그런 연락이 부탁 없이 오갔던 관계라야 나중에 무슨 이야기든 편하게 건널 수 있다는 것 정도다.

어중간한 사이의 힘은 그 사이를 계산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계산하지 않아도 끊기지 않는 정도의 온기에서 나온다. 누군가의 승진 소식에 짧게 축하를 보내고, 회사 옮겼다는 소식에 잘 지내냐고 한 줄 쓰는 일. 그 자체로 값어치가 있어서 하는 일이고, 언젠가 정보가 오간다면 그건 부산물이지 목적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