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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떠난 뒤에도 친구를 잃지 않으려면

떠날 때는 다들 비슷한 말을 한다. 요즘 세상에 거리가 무슨 상관이냐고, 영상통화도 있고 비행기도 있다고. 실제로 처음 몇 달은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통화 간격이 벌어지고, 할 말이 줄고, 일 년쯤 지나면 서로의 안부를 다른 사람을 통해 듣게 된다. 아무도 마음이 변하지 않았는데 관계가 얇아진다.

사라지는 것은 애정이 아니라 공유하던 배경이다

같은 도시에 살 때 두 사람 사이에는 말하지 않아도 공유되는 층이 두껍게 깔려 있다. 같은 날씨를 겪고, 같은 지하철 사고 소식을 듣고, 같은 가게가 망하는 걸 보고, 같은 사람들에 대한 소문을 듣는다. 이 층이 있으면 대화를 시작하는 데 준비가 거의 필요 없다. 어제 그 얘기 들었어, 하고 던지면 바로 이어진다.

멀어지면 이 층이 얇아진다. 대화를 시작하려면 배경 설명부터 해야 한다. 새로 다니는 회사가 어떤 곳인지, 옆자리 사람이 누구인지, 지금 사는 동네가 어떤 분위기인지 모르는 상대에게 오늘 있었던 짜증 나는 일을 설명하려면 세 문장쯤 앞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 세 문장이 귀찮아서 말을 안 하게 되고, 안 한 이야기가 쌓이면 서로 아는 것이 점점 줄어든다.

통화가 근황 보고로 변하는 순간

멀어진 사이의 통화에는 특유의 형식이 생긴다. 서로 그동안 있었던 일을 요약해서 보고하고, 요약이 끝나면 어색해진다. 회사는 어때, 거기 살 만해, 부모님은 잘 계셔. 정보는 오갔는데 만나고 나면 왠지 허전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원래 두 사람을 붙여 놓던 것은 요약이 아니라 자잘한 실황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상황이 웃기다는 것, 방금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 그런 조각들은 요약본에 들어가지 않는다. 한 달에 한 번 한 시간 통화하는 것보다, 일주일에 두 번 사진 한 장과 한 줄을 보내는 쪽이 관계를 훨씬 잘 유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기서 말하는 건 자주 연락하라는 규칙이 아니라 연락의 종류에 관한 이야기다. 실황은 짧아도 되고, 오히려 짧아야 부담이 없다. 길게 잘 쓴 안부 편지 한 통보다 별것 아닌 사진 세 장이 관계를 더 살려 두는 경우가 많다.

같은 것을 동시에 겪는 일이 없어진다

거리가 만드는 또 하나의 변화는 동시성이 사라진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같은 시각에 같은 방송을 보고, 같은 시험 기간을 겪고, 같은 명절 정체에 갇혀 있었다. 그 동시성은 아무 노력 없이 대화거리를 만들어 냈다.

그래서 멀리 떨어진 뒤에도 잘 유지되는 관계들을 보면, 동시성을 인위적으로 조금 만들어 두는 경우가 많다. 같은 드라마를 보기로 하거나, 같은 책을 읽거나, 정기적으로 같은 시간에 통화하기로 정해 두거나. 이건 관리라기보다 대화의 재료를 미리 마련해 두는 일에 가깝다. 재료가 있으면 무슨 말을 해야 하나 고민하는 단계 자체가 사라진다.

떠난 쪽과 남은 쪽은 처지가 다르다

흔히 간과되는 비대칭이 있다. 떠난 사람은 모든 것이 한꺼번에 바뀐다. 새로 적응할 일이 산더미고, 아는 사람이 없어 외롭고, 그래서 옛 친구들이 더 절실해진다. 반면 남은 사람의 일상은 거의 그대로다. 한 명이 빠졌을 뿐 나머지 세계는 계속 돌아간다.

그래서 초반에는 대체로 떠난 쪽이 더 자주 연락한다. 그러다 몇 달이 지나 떠난 쪽이 새 생활에 자리를 잡으면 연락이 급격히 준다. 남은 쪽에서는 이 변화가 서운하게 느껴지기 쉽다. 처음엔 그렇게 매달리더니 이제 새 사람들 생겼다고 잊었나 싶은 것이다. 실제로는 잊은 게 아니라 절박함이 줄어든 것뿐인데, 그 차이는 밖에서 보이지 않는다.

이 어긋남을 아는 것만으로도 서로에 대한 해석이 달라진다. 연락 빈도의 변화를 마음의 변화로 곧장 번역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유학이나 이민처럼 시차까지 끼어 있으면 어긋남은 더 심해진다. 내가 편한 시간이 상대의 새벽인 상황에서는, 답이 늦는 것이 성의의 문제가 아니라 물리의 문제다.

남은 쪽에서 할 수 있는 일

떠난 사람 이야기는 많은데 남은 사람 이야기는 잘 안 나온다. 남은 쪽에도 나름의 상실이 있다. 늘 부르던 사람이 이제 없고, 그 자리를 채워 넣기도 애매하다. 그러면서도 자기가 서운해할 자격이 있나 싶어 말을 못 꺼내는 경우가 많다. 떠난 쪽이 더 힘들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남은 쪽에서 잘 통하는 방식은 그쪽 소식을 묻는 것보다 이쪽 소식을 계속 보내 주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새로 문 연 가게, 예전에 같이 가던 곳이 없어졌다는 소식, 우리 쪽 사람들 근황. 떠난 사람이 가장 빨리 잃는 것이 바로 그 배경 정보이고, 그게 끊기는 순간 돌아와도 낯선 사람이 된 기분이 든다. 별것 아닌 소식을 계속 보내 주는 사람이 있으면 그 감각이 훨씬 늦게 온다.

돌아왔을 때 다 몰아넣지 않기

명절이나 휴가에 잠깐 돌아오면 일정이 빡빡해진다. 며칠 안에 최대한 많은 사람을 봐야 하니 저녁 약속이 연달아 잡히고, 각각의 만남은 두 시간짜리 요약본이 된다. 그렇게 열 명을 만나고 돌아가면서 이상하게 공허해지는 경험을 하는 사람이 많다.

다 만나는 것보다 한두 명과 하루를 통째로 보내는 편이 남는 게 많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같이 장을 보고, 목적 없이 걸어 다니고, 별말 없이 옆에 앉아 있는 시간. 요약이 아닌 시간이 있어야 다음 일 년 치 대화의 바탕이 생긴다.

줄어드는 것을 미리 인정해 두면

멀어지면 관계의 밀도가 줄어드는 것은 자연스럽다. 이걸 실패로 규정하지 않는 관계들이 오래 간다. 예전만큼 자주 연락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서로 인정하고 나면, 어쩌다 오는 연락이 미안함 대신 반가움으로 도착한다.

반대로 예전의 밀도를 기준으로 삼으면 매번 미달이 된다. 미달의 감각은 죄책감이 되고, 죄책감은 연락을 더 어렵게 만든다. 그러다 어느 순간 연락 자체가 부담스러운 일이 되어 버린다. 거리가 관계를 끊는 경우보다, 거리 때문에 생긴 죄책감이 관계를 끊는 경우가 훨씬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