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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친구는 몇 명이면 충분할까

이 질문은 대개 밤늦게 나온다. 나는 친한 친구가 몇 명일까, 다른 사람들은 몇 명쯤 있을까, 이 정도면 적은 걸까. 답을 찾다 보면 숫자를 알려 주는 이야기들이 나오는데, 그 숫자들은 대체로 근거가 생각보다 헐겁고, 무엇보다 이 질문에 답이 되지 않는다. 밤늦게 이 질문을 하는 사람이 알고 싶은 건 평균이 아니기 때문이다.

숫자로 답하면 왜 이상해지는가

친한 친구 세 명이 적정선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해 보자. 그러면 곧바로 세는 일이 시작된다. 이 사람은 들어가나, 저 사람은 요즘 연락이 뜸한데 빼야 하나. 세는 순간 관계가 항목이 되고, 항목이 되면 등급이 생기고, 등급이 생기면 누군가는 탈락한다. 애초에 위로가 되려고 시작한 질문이 사람을 심사하는 절차로 바뀐다.

게다가 이 셈은 잘 맞지 않는다. 지난 두 달간 연락은 없었지만 무슨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있고, 매주 만나지만 정작 진짜 이야기는 한 번도 안 해 본 사람이 있다. 어느 쪽이 가까운 친구인지 한 줄로 정하기 어렵다. 관계는 켜짐과 꺼짐으로 되어 있지 않고, 시기마다 밝기가 달라진다.

세는 대신 물어볼 것: 어떤 종류의 필요가 채워지고 있나

더 쓸모 있는 질문은 몇 명이냐가 아니라, 지금 어떤 자리들이 차 있고 어떤 자리가 비어 있느냐다. 사람이 관계에서 얻는 것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갈래고, 각각은 서로를 대신해 주지 못한다. 아래는 흔히 갈라지는 갈래들이다. 목록을 채워야 하는 표가 아니라, 지금 무엇이 아쉬운지 알아보는 데 쓰는 이름표에 가깝다.

  • 내가 어떤 사람인지 시간을 두고 지켜봐 온 사람.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상대다.
  • 지금의 나를 아는 사람. 옛날의 나만 아는 사람과는 다른 자리다.
  • 같이 있으면 그냥 웃게 되는 사람. 무거운 이야기를 나눌 필요가 전혀 없는 관계.
  • 내 일과 고민의 맥락을 아는 사람. 업계 이야기를 처음부터 설명하지 않아도 통하는 상대.
  • 정말 곤란해졌을 때 새벽에도 전화를 걸 수 있는 사람.
  • 같은 시기를 통과하고 있는 사람. 육아든 이직이든 병간호든, 지금 같은 걸 겪는 중인 사람.

이렇게 늘어놓고 보면 왜 친구가 여럿 있는데도 허전한 날이 있는지 설명이 된다. 사람이 부족한 게 아니라 한 갈래가 통째로 비어 있는 것이다. 반대로 두세 명밖에 없는데 꽉 찬 느낌인 사람도 있다. 그 몇 명이 여러 자리를 동시에 채우고 있는 경우다.

한 사람이 전부를 맡을 수는 없다

가장 흔한 어긋남 중 하나가 한 사람에게 전부를 기대하는 것이다. 배우자나 가장 친한 친구 한 명이 지지자이자 유일한 대화 상대이자 유일한 놀이 친구이자 유일한 상담자여야 한다면, 그 사람은 언젠가 지친다. 그리고 그 사람이 바쁜 시기가 오면 세계 전체가 한꺼번에 꺼진다.

여러 사람에게 나뉘어 있으면 각자에게 걸리는 무게가 가벼워진다. 가벼워지면 오래 간다. 이건 관계를 분산 투자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마다 잘하는 자리가 다르다는 이야기다. 위로를 못 하는 대신 같이 있으면 마음이 편해지는 사람이 있고, 놀 줄은 모르지만 힘든 이야기를 정말 잘 듣는 사람이 있다. 각자에게 그 사람이 잘하는 자리를 맡기면 서로 편하다.

시기에 따라 정원이 달라진다

필요한 관계의 폭은 인생 시기마다 크게 달라진다. 스물몇 살에는 넓게 여럿을 만나는 일이 재미있고 실제로 도움이 되지만, 아이가 아주 어린 시기나 논문 쓰는 시기나 부모의 병을 돌보는 시기에는 세계가 급격히 좁아진다. 그 시기의 좁아짐은 고장이 아니라 정상적인 반응에 가깝다. 쓸 수 있는 게 줄어들면 쓰는 곳도 줄어든다.

문제는 그 시기에 스스로를 평가하기 시작할 때 생긴다. 예전에는 친구가 많았는데 지금은 아무도 없다는 식의 결론이 나오면 자책이 붙고, 자책이 붙으면 연락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실제로는 대부분 사라진 게 아니라 정지해 있는 것이다. 시기가 지나가면 상당수는 다시 움직인다.

가까움은 서로 같은 크기가 아니어도 된다

이 질문을 오래 붙들고 있던 사람들이 결국 부딪히는 대목이 하나 더 있다. 나에게 그 사람이 가장 가까운 친구라고 해서, 그 사람에게도 내가 가장 가까운 친구인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걸 처음 알아차리는 순간은 대체로 아프다. 결혼식 청첩장을 돌리다가, 혹은 그쪽의 힘든 일을 한참 뒤에 다른 경로로 전해 듣고 나서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다만 이 비대칭이 관계가 가짜였다는 증거는 아니다. 사람마다 관계의 지형이 다르게 생겼고, 어떤 사람은 아주 좁고 깊게, 어떤 사람은 넓고 고르게 가깝다. 넓고 고른 쪽에 있는 사람에게는 유일한 1순위라는 자리가 애초에 없다. 그 사람이 나를 덜 아끼는 게 아니라 아낌의 모양이 다른 것이다. 서로의 순위가 맞아떨어져야만 진짜라고 정해 두면, 실제로 존재하는 좋은 관계들이 상당수 탈락한다.

충분한지 아닌지를 알아보는 다른 방법

숫자를 세는 대신 최근 몇 달을 돌아보며 이런 걸 떠올려 보는 사람이 많다. 좋은 일이 생겼을 때 제일 먼저 알리고 싶은 얼굴이 떠올랐는지. 안 좋은 일을 겪었을 때 실제로 누군가에게 말했는지, 아니면 혼자 삼켰는지. 최근에 아무 목적 없이 두 시간쯤 같이 있어 본 사람이 있는지.

여기서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 항목이 있다면, 그건 친구가 몇 명인지의 문제가 아니라 그 종류의 자리가 비어 있다는 신호다. 그리고 비어 있는 자리는 대체로 새 사람을 사귀어서보다, 이미 아는 사람 중 누군가와 관계의 결을 조금 바꿔서 채워지는 경우가 많다. 늘 웃고 떠들던 사이에 처음으로 요즘 좀 힘들다고 말해 보는 식이다.

그러니 몇 명이면 충분하냐는 질문에는 정직하게 답하기가 어렵다. 대신 이렇게는 말할 수 있다. 지금 이 질문이 떠올랐다는 건 어떤 자리가 비어 있다는 뜻이고, 그 자리의 이름을 알아내면 무엇이 아쉬운지도 훨씬 또렷해진다. 숫자는 그 자리의 이름을 알려 주지 못한다. 그래서 숫자를 세는 일은 대개 답 대신 불안만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