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는 있는데 왜 외로울까
주말에 약속이 있고, 단톡방은 알림이 계속 뜨고, 생일에는 축하 메시지가 스무 개쯤 온다. 그런데도 저녁에 집에 돌아와 불을 켜는 순간 이상하게 헛헛하다. 이 상태를 말로 꺼내기가 어려운 건, 말하는 순간 배부른 소리처럼 들릴까 봐서다. 친구도 있는데 외롭다니. 그런데 외로움은 사람이 몇 명인지를 세는 감정이 아니라서, 사람이 여럿 있는 상태에서도 얼마든지 성립한다.
외로움은 인원 수를 세지 않는다
외로움을 사회적 고립과 같은 것으로 여기면 계산이 안 맞는다. 하루 종일 혼자 있어도 멀쩡한 날이 있고, 사람들 한가운데 앉아 있는데 유리 한 겹이 끼어 있는 것 같은 날이 있다. 둘의 차이를 만드는 건 접촉의 양이 아니라, 지금 내가 어떤 상태인지를 알고 있는 사람이 있느냐 하는 쪽에 가깝다.
사람은 자기 상태를 혼자서는 잘 확인하지 못한다. 누군가 요즘 좀 지쳐 보인다고 말해 줄 때, 그때서야 내가 지쳐 있었구나 하고 알게 되는 경험은 대부분 해 봤을 것이다. 자기 상태를 되비쳐 주는 사람이 근처에 없으면, 사람은 자기가 지금 괜찮은지 아닌지도 모르는 채로 계속 굴러간다. 외로움은 그 되비침이 끊겼을 때 켜지는 신호에 가깝다.
나눠서 아는 사이만 많을 때
성인의 인간관계는 대개 구획별로 나뉜다. 회사 동기들은 내 업무 얘기를 알고, 대학 친구들은 내 옛날 연애사를 알고, 운동 모임 사람들은 내 요즘 컨디션을 안다. 각각의 관계는 다 진짜인데, 그 어느 쪽도 나 전체를 보고 있지는 않다. 조각들이 흩어져 있으면 합쳐서 한 사람이 되지 않는다.
이게 특히 두드러지는 순간이 안 좋은 소식이 생겼을 때다. 부모님이 편찮으시거나, 회사에서 크게 깨졌거나, 결과를 기다리는 검사가 있을 때. 연락처를 위에서부터 내려 보다가, 이 사람에게는 앞뒤 설명을 삼십 분쯤 해야 하고 저 사람에게는 이 얘기가 어울리지 않고 하면서 손가락만 내려가는 그 시간. 그때 느끼는 건 친구가 없다는 감각이 아니라 맥락을 공유한 사람이 없다는 감각이다.
연결은 늘었는데 목격은 줄었다
메신저는 연락을 아주 쉽게 만들었지만 한 가지를 바꿔 놓았다. 예전에는 안부를 물으려면 통화를 하거나 만나야 했고, 그 과정에서 상대의 목소리 톤이나 표정 같은 걸 어쩔 수 없이 접하게 됐다. 지금은 프로필 사진과 상태 메시지, 가끔 올라오는 사진으로 상대가 잘 지내고 있다고 판단해 버릴 수 있다. 잘 지내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에게는 굳이 묻지 않게 된다. 서로 그렇게 하고 있으면, 양쪽 다 상대가 잘 지낸다고 믿으면서 각자 힘들다.
단톡방도 비슷한 착시를 만든다. 하루에 메시지가 백 개씩 오가는 방에 속해 있으면 관계가 활발하다고 느껴지지만, 단톡방의 대화는 대체로 아무에게도 향하지 않은 말들이다. 누구에게 하는 말도 아니어서 누구도 대답할 의무가 없고, 그래서 편하기도 하다. 다만 그 편함은 목격과는 다른 종류의 것이다.
혼자만 이러는 것 같다는 착각
이 감각의 가장 고약한 부분은 부끄러움이 따라온다는 점이다. 친구가 있는데도 외롭다고 느끼면, 자기가 뭔가 잘못 만들어진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더 말하지 않게 되고, 말하지 않으니까 주변 사람들도 다 괜찮아 보이고, 나만 이러는 것 같다는 결론이 강화된다. 각자 자기 방에서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서로를 못 보는 구조다.
실제로는 이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냈을 때 상대가 아 나도, 하고 대답하는 비율이 상당히 높다. 꺼내기 전에는 절대 그럴 리 없어 보이는 사람도 그렇다. 잘 지내 보이는 것과 잘 지내는 것 사이의 거리는 대체로 우리가 짐작하는 것보다 멀다.
외로움이 알려 주는 것
외로움을 고쳐야 할 결함처럼 다루면 답이 잘 안 나온다. 배고픔이 몸에 뭔가 필요하다는 신호이듯, 외로움도 지금 어떤 종류의 접촉이 모자란다는 신호에 가깝다. 신호 자체를 없애려고 하기보다 무엇이 모자란지 읽어 보는 편이 훨씬 실용적이다.
모자란 종류는 사람마다 다르고 시기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속 이야기를 할 상대가 필요하고, 누군가는 그냥 같은 공간에 사람이 있는 상태가 필요하다. 각자 자기 일을 하면서 한 방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 풀리는 종류의 외로움이 분명히 있다. 또 누군가는 자기 하루가 어딘가에 닿는다는 감각, 오늘 뭐 했는지를 아는 사람이 하나쯤 있다는 감각이 필요하다.
이 셋은 처방이 완전히 다르다. 그래서 요즘의 외로움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한 번 들여다보는 게 도움이 된다. 사람이 그리운 건지, 특정한 그 사람이 그리운 건지, 아니면 내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를 아무도 모른다는 쪽인지. 답이 달라지면 다음에 할 일도 달라진다.
채워지는 방향은 대개 넓이가 아니라 깊이
외롭다고 느낄 때 사람을 더 만나는 쪽으로 움직이는 건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모임에 나가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약속을 늘린다. 그런데 이미 관계가 여럿 있는 상태에서 느끼는 외로움은 대체로 넓이를 늘려도 잘 줄어들지 않는다. 새로 만난 사람에게는 맥락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근황 요약을 한 번 더 하고 오는 셈이 되기 쉽다.
변화가 생기는 지점은 보통 이미 있는 관계 중 하나에서 한 겹을 벗을 때다. 굉장한 고백일 필요는 없다. 요즘 별일 없다는 대답 대신 요즘 좀 지친다고 한 줄 붙이는 정도, 잘 지내지의 대답을 사실대로 하는 정도. 그 한 줄이 상대에게 문을 하나 열어 준다. 대개는 상대도 비슷한 문을 찾고 있었다.
그리고 이 외로움이 반드시 해결해야 할 결함은 아니다. 삶의 어떤 구간에서는 그냥 그런 시기가 있다. 이사한 직후, 이직한 직후, 아이가 어린 시기, 오래 만나던 사람과 헤어진 다음. 그 시기의 외로움은 뭔가를 잘못해서 생긴 게 아니라 조건이 그래서 생긴 것이고, 조건이 바뀌면 대체로 옅어진다. 그동안 자기를 나무라지 않는 것만으로도 꽤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