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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난 사이인지 조용한 사이인지 모르겠을 때

마지막으로 대화한 게 언제인지 세어 본다. 반년쯤 됐다. 그사이에 서운한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크게 다툰 적도 없다. 그런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채로 시간만 지났다. 이게 끝난 관계인지, 아니면 잠깐 조용해진 관계인지 알 수가 없다. 그리고 이 모르는 상태가 사실 관계 자체보다 더 신경을 갉아먹는다.

우정에는 끝을 알리는 절차가 없다

다른 관계에는 대체로 종료를 알리는 형식이 있다. 연애에는 헤어지자는 말이 있고, 직장에는 퇴사가 있고, 계약에는 만료일이 있다. 우정만 그런 게 없다. 아무도 우리 이제 그만하자고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모든 소원해진 관계가 결론 없이 열린 채로 남는다.

이게 왜 이렇게 불편한지 생각해 보면, 사람이 견디기 힘들어하는 건 나쁜 소식보다 결론 없는 상태 쪽이기 때문이다. 확실히 끝났다는 걸 알면 슬프긴 해도 정리할 수 있다. 끝났는지 아닌지 모르면 정리할 수도 없고 이어 갈 수도 없다. 그래서 반년 동안 그 사람 이름이 계속 마음 한구석에 걸려 있게 된다.

덧붙이자면 이 형식의 부재는 나쁘기만 한 것도 아니다. 종료 절차가 없다는 건 재개 절차도 필요 없다는 뜻이다. 삼 년 뒤에 연락해도 계약을 다시 맺을 필요가 없다. 우정이 유독 오래 살아남는 관계인 것도 이 구조 덕분이다.

서둘러 끝났다고 정하는 이유

애매한 상태를 오래 견디는 사람은 드물다. 그래서 많은 경우 증거가 충분하지 않은데도 결론을 내려 버린다. 걔는 이제 나한테 관심 없다고. 이 판정은 마음을 꽤 편하게 해 준다. 더 이상 기다리지 않아도 되고, 연락하지 않는 나 자신도 설명이 된다. 애매함을 감정적 비용 없이 처리하는 가장 빠른 방법이다.

문제는 이 판정이 스스로를 실현시킨다는 점이다. 끝났다고 정하고 나면 연락을 하지 않고, 상대가 어쩌다 보낸 짧은 메시지도 형식적인 것으로 읽힌다. 그러면 정말로 끝난다. 판정이 맞아떨어진 게 아니라 판정이 결과를 만든 것인데, 나중에 돌아보면 역시 그때 내 판단이 맞았다고 기억하게 된다.

반대 방향의 오류도 있다. 아무 일 없다고 계속 미루는 경우다. 다만 이쪽은 대가가 훨씬 작다. 조용한 관계를 조용한 채로 두는 건 되돌릴 수 있지만, 끝났다고 정하고 몇 년 지나 버리면 되돌릴 자리가 남지 않는다.

침묵을 읽을 때 자주 틀리는 지점

침묵을 해석할 때 사람들은 그것을 결정으로 읽는 경향이 있다. 저쪽이 나와 거리를 두기로 마음먹었다고. 그런데 실제 침묵의 대부분은 결정이 아니라 지연의 누적이다. 답장을 하루 미루고, 미루니 답이 길어져야 할 것 같고, 길게 쓸 여력이 없어서 또 미룬다. 한 달쯤 지나면 이제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가 된다.

이 상태의 사람은 나를 멀리하고 있는 게 아니라 자기가 만든 부담에 갇혀 있다. 그리고 이런 사람은 대개 상대가 먼저 아무렇지 않게 말을 걸어 주면 크게 안도한다. 침묵의 길이는 마음의 거리를 재는 자로 쓰기에는 너무 부정확하다.

더구나 같은 침묵이 양쪽에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을 때가 아주 많다. 둘 다 상대가 조용하다는 사실을 보고 있고, 둘 다 그걸 상대의 의사로 읽고 있고, 둘 다 그래서 먼저 연락하지 않는다. 이 교착에는 사실 아무도 결정한 사람이 없다.

그래도 조금 도움이 되는 관찰들

밖에서 완전히 판정할 방법은 없지만, 방향을 가늠하는 데 참고가 되는 것들은 있다. 하나는 침묵이 어느 쪽에서 오는가다. 둘 다 조용한 상태는 대개 관성이고, 내가 계속 보내는데 답만 짧아지는 상태는 조금 다른 이야기일 수 있다.

또 하나는 회피의 흔적이다. 단톡방에서는 평소처럼 말하는데 개인 대화만 답이 없다든지, 모임에서 나만 있는 자리를 반복해서 피한다든지 하는 것. 이건 우연으로 보기 어려운 신호에 속한다. 반대로 그 사람이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조용하다면 그건 나에 관한 일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마지막은 다시 만났을 때의 온도다. 사실 이게 가장 믿을 만한데, 만나 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는 게 곤란한 점이다. 어색함이 십 분 만에 풀리는지, 세 시간 내내 남아 있는지. 여기서 나오는 답은 대체로 정확하다.

시험하지 않는 편이 낫다

애매한 상태를 견디다 못해 사람들이 자주 하는 일이 있다. 시험이다. 내가 연락 안 하고 얼마나 가나 보자, 이번엔 저쪽이 먼저 하나 보자. 이 방법의 문제는 답을 주지 않는다는 데 있다. 상대가 연락을 안 해도 그게 마음이 없어서인지 나처럼 미루고 있어서인지 구분이 안 된다.

더 곤란한 건 상대도 같은 시험을 하고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면 두 사람이 서로를 시험하면서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 상태가 몇 년 이어진다. 시험은 관계를 측정하는 대신 소모한다.

실제로 확인하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열어 보는 것. 다만 여기서 판결을 요구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 우리 사이 왜 이렇게 됐냐고 묻는 문장은 상대에게 지금 당장 관계를 정의하라고 요구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그 요구 앞에서 방어적으로 변하고, 그러면 실제보다 나쁜 답이 나온다.

판정을 요구하지 않는 말 걸기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첫 문장은 가벼운 편이 낫다. 무게는 대화가 시작된 다음에 실어도 늦지 않는다.

  • 한참 못 봤네. 잘 지내지?
  • 오늘 네가 좋아하던 거 보고 생각났어.
  •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서. 별일 없어?
  • 연락이 뜸했다 싶어서 그냥 안부 물어봐.

이 문장들은 아무것도 판정하지 않는다. 관계를 정의하라고 요구하지도 않고, 공백을 문제 삼지도 않는다. 그래서 상대가 답하기 쉽고, 답이 오고 나면 온도는 대체로 저절로 드러난다.

조용한 상태로 두어도 되는 관계가 있다

모든 관계가 항상 활성 상태여야 하는 건 아니다. 몇 년째 조용한데 여전히 살아 있는 사이가 실제로 존재한다. 부고를 알려야 할 명단에는 들어가고, 어쩌다 마주치면 반가운 사람들. 이런 관계를 끝났다고 처리해 버리면 아무 이득도 없이 하나가 줄어들 뿐이다.

그러니 지금 답이 나오지 않는다면, 답을 내지 않은 채로 두는 것도 하나의 선택이다. 끝났다고 확정하지 않는 것 자체가 관계를 남겨 두는 방식이다. 그리고 몇 년 뒤에 무언가 계기가 생겼을 때, 확정하지 않고 남겨 둔 관계에는 다시 말을 걸 자리가 있다.

결국 조용한 관계와 끝난 관계는 밖에서 보면 정말로 똑같이 생겼다. 다른 점은 하나뿐이다. 조용한 관계는 누군가 말을 걸면 다시 움직이고, 끝난 관계는 움직이지 않는다. 그 차이는 말을 걸어 보기 전까지 알 수 없고, 그 사실이 답답한 만큼이나 다행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