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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친구들과는 왜 연락이 끊길까

사 년 동안 거의 매일 붙어 다니고, 서로의 자취방에서 자고, 시험 기간마다 같은 책상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졸업하고 몇 년이 지나면 그중 절반은 이름만 남는다. 싸운 것도 아니고 실망한 것도 아닌데 그렇게 된다. 이건 사람의 문제라기보다 졸업이라는 사건이 관계에 어떤 일을 하는지의 문제에 가깝다.

졸업은 이별로 취급되지 않는다

졸업식장에서 우리 자주 보자고 말할 때, 대부분은 그 말을 진심으로 한다. 그리고 그 말을 하는 순간에는 실제로 자주 볼 것 같다. 이별이라는 실감이 없기 때문이다. 이사도 아니고 절교도 아니고, 그냥 학기가 하나 더 이어지지 않을 뿐이니까.

그래서 대학 친구들과는 마지막 인사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 관계에 끝맺음이 없으면 끝났다는 자각도 없고, 자각이 없으니 되살릴 시도도 없다. 몇 년 뒤에야 아, 우리 이제 안 보는구나 하고 뒤늦게 알게 된다. 이 뒤늦음이 대학 친구 관계의 가장 큰 특징이다.

흩어지는 속도가 저마다 다르다

졸업 무렵의 몇 년 동안 사람들은 서로 완전히 다른 시간표를 살게 된다. 누구는 바로 취업하고, 누구는 대학원에 가고, 누구는 군대에 있고, 누구는 시험 준비를 몇 년째 하고, 누구는 유학을 간다. 같은 학번인데 삶의 단계가 서너 개로 갈라진다.

이 시기의 대화가 어려워지는 건 관심이 식어서가 아니라 서로의 하루가 너무 달라져서다. 매일 야근하는 사람과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 사이에서는 오늘 어땠냐는 질문의 무게가 다르다. 잘 지낸다고 답하기도, 안 지낸다고 답하기도 애매한 상태가 몇 년씩 이어지면 자연스럽게 연락이 줄어든다.

여기에 처지의 차이가 처음으로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는 사정이 겹친다. 학교에 다닐 때는 다들 비슷하게 돈이 없었고 비슷하게 앞이 안 보였다. 졸업 후 몇 년이 지나면 소득도 안정성도 벌어진다. 이 격차 자체가 관계를 끊는 것은 아니지만, 말을 고르게 만든다. 잘된 쪽은 자랑처럼 들릴까 봐 말을 아끼고, 아직인 쪽은 초라해 보일까 봐 말을 아낀다. 양쪽 다 편집을 시작하면 대화에 남는 것은 날씨와 안부뿐이다.

단톡방이 조용해지는 과정

졸업 직후의 단톡방은 시끄럽다. 그러다 어느 시점부터 특정 몇 명만 말하게 되고, 나머지는 읽기만 한다. 읽기만 하는 상태가 길어지면 이제 뭐라도 쓰려고 할 때 어색해진다. 몇 달 만에 등장해서 첫마디를 던지는 일에는 이상한 부담이 있다.

결국 방은 남아 있는데 대화는 사라진다. 청첩장을 돌릴 때, 부고를 전할 때, 누가 아이를 낳았을 때만 잠깐 살아난다. 그리고 그때 몇 명이 축하 이모티콘을 남기고 다시 조용해진다. 이 상태를 관계가 끊긴 것으로 봐야 할지 아닐지가 애매해서, 사람들은 대개 판단을 미룬다. 미루는 동안 시간이 더 지나간다.

대학 친구는 그 시절의 나와 함께 묶여 있다

또 하나 잘 이야기되지 않는 것이 있다. 대학 친구들은 지금의 나보다 스물몇 살의 나를 훨씬 잘 안다는 점이다. 그때 내가 어떤 실수를 했는지, 무엇 때문에 울었는지, 어떤 사람을 좋아했는지 아는 사람들이다.

이게 큰 자산일 때도 있지만 부담일 때도 있다. 그 시절과 지금 사이에 큰 변화가 있었던 사람일수록 그렇다. 다른 일을 하게 되었거나, 그때의 자기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그 시기에 힘든 일이 있었던 경우. 그 사람들을 만나면 예전의 나로 잠깐 돌아가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 은근히 피하게 되는데, 본인도 왜 내키지 않는지 정확히는 모르는 채로 그렇게 된다.

모임을 굴리던 사람이 빠지면 한꺼번에 조용해진다

어느 모임에나 날짜를 잡고 사람을 부르고 장소를 정하던 사람이 있다. 대학 때는 그 역할이 자연스럽게 돌아가는 편이지만, 졸업 후에는 대개 한 명에게 몰린다. 그 사람이 바빠지거나 지방으로 발령이 나거나 아이가 태어나면, 모임 전체가 동시에 멈춘다.

이때 나머지 사람들은 모임이 없어졌다고 느끼지만, 실제로 없어진 것은 일정을 잡던 한 사람의 여력이다. 서로 만나기 싫어진 것이 아닌데 결과만 보면 똑같이 안 만나는 상태가 된다. 그 역할을 아무도 넘겨받지 않으면 관계는 그대로 정지한다. 대학 동기 모임이 특정 시기에 갑자기 사라지는 사례의 상당수가 이 모양이다.

끊긴 게 아니라 보류된 경우가 많다

다행인 건 대학 친구 관계가 대체로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몇 년 만에 연락해도 첫 삼십 분이면 말투가 그때로 돌아간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함께 보낸 시간의 밀도가 워낙 높았기 때문이다. 매일 몇 시간씩 사 년을 같이 있은 관계는 그렇게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그래서 이 관계들은 끊긴 것이라기보다 보류된 것에 가깝다. 결혼식이나 상가에서 오랜만에 마주쳤을 때 어색함이 금방 풀리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문제는 그런 계기가 아니면 다시 만날 이유가 잘 안 생긴다는 점이다. 계기를 기다리다 보면 계기는 대개 경조사 쪽에서 온다.

다시 이어 보고 싶다면

이 관계를 다시 열 때 흔히 하는 실수가 전체를 한꺼번에 되살리려는 것이다. 단톡방에 오랜만에 다 같이 보자고 던지면, 열 명의 일정을 맞추는 문제가 되고 그러다 흐지부지된다. 대신 그중 한 명에게 따로 연락하는 쪽이 훨씬 잘 된다. 사 년을 같이 보낸 열 명 전부와 지금도 맞는 것은 아니고, 실은 그중 두세 명과 계속 이어지는 것으로 충분한 경우가 많다.

그리고 예전만큼 자주 보지 않게 된 것을 두고 스스로를 탓할 일도 아니다. 그때 그렇게 붙어 지낸 것은 그 시기의 조건이 만들어 준 일이었고, 조건이 사라진 뒤에도 남아 있는 몇 사람이 있다면 그건 오히려 드문 일이다. 나머지는 나빠진 게 아니라 그 시절 안에 잘 놓여 있는 것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