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내가 먼저 연락하는 것 같을 때
어느 날 대화 목록을 위에서 아래로 훑어보다가 문득 알아차린다. 최근 대화의 첫 메시지가 전부 내 쪽이다. 이 발견은 기분이 좋지 않다. 내가 이 관계들을 혼자 끌고 있었나 싶고, 그러면 그동안의 다정함이 조금 초라해진다. 이 감각은 진짜이고 무시할 것도 아니지만, 여기서 곧바로 결론으로 넘어가면 대개 실제보다 나쁜 결론이 나온다.
이 감각의 어디까지가 사실인가
먼저 계산 쪽을 한 번 점검해 볼 만하다. 내가 보낸 메시지는 전부 내 기억에 남아 있다. 쓸까 말까 망설였고, 문장을 고쳤고, 답을 기다렸다. 반면 상대가 나에게 한 시도 중에는 내가 세지 않은 것들이 있다. 내 SNS 게시물에 남긴 반응, 우연히 마주쳤을 때 먼저 말을 건 것, 다른 사람을 통해 안부를 물은 것, 명절이나 생일에 온 짧은 메시지.
더 결정적인 건 상대가 나를 떠올렸지만 보내지 않은 순간들이다. 그건 원리적으로 내가 알 수 없다. 나는 나의 시도를 전부 알고 상대의 시도는 일부만 안다. 이 비대칭 때문에, 관계에서 내가 더 많이 하고 있다는 느낌은 양쪽 모두에게 동시에 생길 수 있다.
그렇다고 이 느낌이 항상 착시라는 말은 아니다. 실제로 한쪽이 거의 전부를 시작하는 관계는 존재한다. 다만 결론을 내리기 전에 한 번은 이 계산의 성질을 떠올려 볼 가치가 있다.
먼저 말을 거는 성향은 꽤 안정적인 차이다
사람에게는 연락을 시작하는 문턱이 다르게 설정되어 있다. 어떤 사람은 생각이 나면 그 자리에서 보낸다. 어떤 사람은 생각이 나도 지금은 상대가 바쁠 것 같아서, 이런 사소한 걸로 방해하기 뭐해서, 오랜만이라 어색해서 보내지 않는다. 두 번째 유형은 마음이 덜한 게 아니라 문턱이 높은 것이다.
이 차이는 성인이 되어서도 잘 안 바뀐다. 그래서 시작하는 쪽이 늘 같은 사람인 관계는 아주 흔하고, 그중 상당수는 양쪽 다 만족하고 있다. 받는 쪽은 매번 반가워하고, 보내는 쪽은 그게 크게 부담이 아니다. 문제가 되는 건 보내는 쪽이 지치기 시작할 때다.
지치는 건 횟수 때문이 아닌 경우가 많다
먼저 연락하는 일 자체는 사실 별로 힘들지 않다. 힘든 건 그 뒤에 붙는 해석이다. 내가 없으면 이 관계는 없는 건가, 나는 이 사람에게 그 정도인가. 이 해석이 붙는 순간부터 메시지 하나를 보내는 게 시험처럼 느껴지고, 답이 미지근하면 그게 채점 결과처럼 읽힌다.
그리고 이 해석은 대체로 근거가 약하다. 관계에서의 열의는 시작 횟수 말고도 여러 곳에 나타난다. 만났을 때 얼마나 기뻐하는지, 내 이야기를 얼마나 기억하고 있는지, 내가 힘들다고 했을 때 무엇을 하는지. 시작 횟수만 세면 이 정보들이 전부 계산에서 빠진다.
계산서를 만들면 벌어지는 일
답답할 때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방법이 있다. 이번엔 내가 연락 안 해 보고 얼마나 가는지 보는 것이다. 마음은 이해가 가는데, 이 방법은 원하는 답을 거의 주지 못한다.
우선 침묵은 정보가 아주 적은 신호라서, 몇 달이 지나도 그게 무관심 때문인지 문턱 때문인지 구분되지 않는다. 게다가 이 실험을 하는 동안 내 마음에는 계산서가 쌓인다. 몇 달 뒤에 상대가 연락해 오더라도, 그때쯤이면 이미 서운함이 두껍게 쌓여 있어서 반가움이 잘 안 나온다. 실험 자체가 결과를 오염시킨다.
더 근본적으로, 관계를 주고받은 횟수로 정산하기 시작하면 거의 모든 관계가 적자로 보인다. 사람은 자기가 한 것을 더 잘 기억하도록 되어 있어서, 양쪽이 정확히 반씩 해도 양쪽 다 자기가 더 했다고 느낀다. 이 계산법으로는 어떤 관계도 흑자가 되지 않는다.
그래도 말로 꺼내고 싶다면
피로가 실제로 쌓였다면 말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다만 이 이야기는 상대를 비난하지 않는 형태로 꺼낼 때 훨씬 잘 도착한다. 불만이 아니라 바람으로 말하는 쪽이다.
- 가끔은 네가 먼저 연락 오면 좋겠다. 별 얘기 아니어도.
- 내가 연락 안 하면 우리 몇 달은 그냥 지나가겠더라. 그게 좀 아쉬웠어.
- 답 잘 해 주는 건 아는데, 먼저 오는 연락이 반가운 것도 있더라고.
이런 말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은 의외로 비슷하다. 몰랐다고 한다. 자기는 매번 반가워했으니 관계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상대 쪽에서 그 반가움이 안 보인다는 사실을 떠올려 본 적이 없는 것이다. 말한다고 사람의 문턱이 크게 낮아지지는 않지만, 적어도 한동안은 달라진다.
관계마다 시작하는 사람이 다르다
대화 목록 전체를 놓고 보면, 내가 늘 시작하는 사이가 있고 상대가 늘 시작하는 사이도 있다. 후자는 잘 세어지지 않는다. 내가 애쓰지 않아도 굴러가는 관계는 눈에 잘 띄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억울함은 앞쪽에서만 계산되고, 뒤쪽은 계산에서 통째로 빠진다.
그러니 나는 항상 먼저 연락하는 사람이라는 문장은 특정 관계에 대해서는 사실이어도 내 관계 전체에 대해서는 사실이 아닌 경우가 많다. 이 구분이 의외로 도움이 된다. 지친 대상이 인간관계 전반이 아니라 한두 관계라면, 조정할 곳도 한두 군데뿐이라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조정할 수 있는 것들
말하는 것 말고도 쓸 만한 조정이 몇 가지 있다. 하나는 내 쪽의 기대를 관계별로 다르게 두는 것이다. 이 사람은 내가 먼저 하는 사이라고 정해 두면, 매번 그 사실을 새로 발견하면서 상처받는 일이 줄어든다. 다른 하나는 밀도를 낮추되 끊지는 않는 것이다. 한 달에 한 번이 힘들면 계절에 한 번으로 두면 된다.
그리고 한 가지만 덧붙이자면, 먼저 연락하는 사람이 손해를 보고 있는 건 아니다. 먼저 말을 거는 사람은 대체로 자기 관계망 안에서 여러 사람의 소식이 모이는 자리에 있게 된다. 이 사람이 조용해지면 정말로 여러 관계가 조용해지는데, 그건 이용당하고 있다는 뜻이 아니라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이 하는 일이 원래 그렇다는 뜻이다. 다만 그 일이 힘들 때는 잠시 쉬어도 아무 문제가 없다. 몇 달 쉰다고 사라질 관계라면 애초에 내 노력으로 붙잡고 있던 관계도 아니었을 것이다.